근대화와 기독교의 관계
외침[言] 2006/05/22 23:00 블로그를 뒤적이다가 예전에도 본 것 같은 어떤 글을 다시 봤다.
하지만 저 비유가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저 영국인이 시운전을 마친 후에 포교를 시작했다고 해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식민지를 근대화한다는 건 한손엔 신식 문물을 다른 손엔 종교를 들고 찾아가,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에서 기존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뿌리뽑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앞부분의 유머에 살짝 불편함을 느끼는건 근대화의 역사 뿐만 아니라, '미개인'을 바라보는 저 관점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저 농담이 상대를 웃기지 못한다면, 이런 식의 전도는 수명이 다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저 인도인 영주는 차를 굴릴 기름과 도로를 얻는 대가로 무엇을 내주었을까? 그냥 하던 대로 황소로 수레를 끄는게 나았다고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영국의 귀족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사하였다.분명 전에는 마지막 문장이 없었던 것 같은데...한 문장만 빼면 '미개한 인도인'을 비웃는 농담일텐데, 마지막 문장으로 두 가지 대조를 엮어놓았다. '근대화된 영국인 대 미개한 인도인'과, '사서 고생하는 사람 대 성령을 받은 사람' 쯤 되려나. (그나저나, 성령 받기 전 신앙생활이란게 무슨 뜻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성령은 안받고 신앙생활은 하려니 그게 사서 고생이란 뜻인가?)
트럭을 선물로 받은 영주는 몹시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귀족이 영주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황소 서너 마리가 자기가 선물한 트럭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족은 영주에게 트럭이 황소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트럭에 휘발유를 넣고 운전을 하면 트럭이 수십 마리의 황소를 끌 수 있다고 말하면서 트럭을 시운전해 주었다고 한다.
성령 받기 전 신앙생활이란 여러분이 트럭을 끄는 것과 같지만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수레를 끌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 비유가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저 영국인이 시운전을 마친 후에 포교를 시작했다고 해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식민지를 근대화한다는 건 한손엔 신식 문물을 다른 손엔 종교를 들고 찾아가,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에서 기존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뿌리뽑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앞부분의 유머에 살짝 불편함을 느끼는건 근대화의 역사 뿐만 아니라, '미개인'을 바라보는 저 관점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저 농담이 상대를 웃기지 못한다면, 이런 식의 전도는 수명이 다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저 인도인 영주는 차를 굴릴 기름과 도로를 얻는 대가로 무엇을 내주었을까? 그냥 하던 대로 황소로 수레를 끄는게 나았다고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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